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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의 한라칼럼] 한국전쟁 중에 핀 제주관악의 꽃

작성일
2021-08-05
작성자
admin
조회
397

음악인들은 전국 400여 관악단 중 40여 관악단이 활동하고 있는 제주도를 관악의 섬이라 부른다. 이를 상징하듯 1995년 이후 8월이 되면 제주에서는 국제관악제가 열린다. 제주의 관악은 한국전쟁 당시 제주에서 근무한 미국인 길버트 소령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제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보자.

1950년 말 전쟁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스 대령에 의해 제주도로 이송된 천여 명의 고아들을 수용하기 위해 제주농업학교 폐건물에 한국보육원(원장 황온순)이 들어선다. 훗날 한국전쟁과 전쟁고아의 실상을 담은 헤스 대령의 자전적 소설인 전송가가 영화로 제작돼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상연에 따른 수익금이 한국보육원에 보내진다.

1951년 제주관악의 은인인 길버트 소령이 유엔민간협력기관(UNCACK)의 제주지역 책임자로 입도한다. 자신의 고유업무와는 별개로, 전쟁고아들로 구성된 한국보육원 관악대를 창단하고, 제주중학교.제주농업학교(6년제:1951년 제주농고와 제주일중으로 분리) 등의 관악대를 순회지도하고, 고봉식(전 제주도교육감, 초대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장) 음악교사를 도와 오현고등학교 교악대 창단을 지원한다. 이에 힘입은 오현고는 진주시에서 개최된 전국 관악경연대회에서 1953년부터 1973년까지 16연승 등을 차지한다.

1952년엔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유엔사령관 벤플릿 장군 부부 그리고 최승만 도지사와 도민들이 참석하여 거행된 제주도청 청사준공식에서 길버트 소령이 지휘한 제주도 연합밴드 연주가 절찬을 받는다. 이를 계기로 한국보육원 꼬마밴드 및 합창대원 60여 명은 벤플릿 장군이 제공하는 비행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조선호텔.서울시민관.강원도 등지에서 유엔군 위무 연주회를 갖는다. 그리고는 1953년 길버트 소령은 타지 근무의 명을 받는다. 도내 여러 음악단체가 그를 위해 관덕정 광장에서 송별 음악회를 마련하고, 며칠 후 제주항에서도 송별연주를 받은 길버트 소령은 또한, 선상에서 선하의 관악대를 지휘하며 제주도를 떠난다.

다음은 길버트 소령이 귀국 후 ‘school musician’이라는 미국잡지에 기고한 글이다. '전쟁기간에 제주도 젊은이들과 함께한 19개월은 나에게 인간의 노력.희생.재능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밴드라는 매개체로 한국민요인 아리랑과 도라지 그리고 성조기여 영원하라 등의 연주를 통하여 전쟁 중에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길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남기고 나는 떠났다.'

제주의 음악교사들에게 지휘법을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악기연주 등을 지도한 길버트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자 음악교육가였으리라. 그 고마움을 회상하며 길버트 소령을 찾아나선 제주의 관악인들은, 서울교육대 장기범 교수의 도움으로 작고한 길버트 소령의 소식을 늦게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4년 제주국제관악제 행사에 길버트 소령의 딸 부부를 초청하여, 관악으로 맺어진 길버트와 제주의 인연을 기리는 보은의 자리를 마련했다. 전쟁 속에서도 인류애를 음악으로 펼쳤던 길버트 소령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직책이나 임무가 아니라, 전문성과 열정 그리고 사랑임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제주국제관악제가 사뭇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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